박찬욱의 세계, 류성희의 공간
보이지 않는 감정을 설계하는 영화 미술의 기술
영화 속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인물의 감정, 장면의 온도, 시간의 결이 담긴다.
류성희 미술감독(이하 류성희)은 그 ’보이지 않는 정서‘를 디자인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빛과 재질, 배치와 온도로 감정을 말하고, 말 없는 여백으로 서사를 지탱한다.
공간에 스민 감정이 오래 남도록 디자인하는 것. 그것이 류성희식 미학이다.
류성희는 과한 장식보다 감정이 머무는 공기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영화 미술이 인물을 압도하지 않기를 바라며, 감독이 디자인한 서사 안에서 장면이 자연스럽게 숨 쉬도록 공간을 조율한다.그 여백은 단순한 비움이 아니다. 감정이 스며들고, 관객의 해석이 들어설 틈이다.
류성희의 미술은 박찬욱의 영화에서 가장 선명하게 빛난다.
<아가씨>의 이중적 구조, <헤어질 결심>의 공간과 감정의 거리, 그리고 최근작 <어쩔 수가 없다> 까지 그녀는 감독의 감정을 ’공간의 언어‘로 치환해낸다.
벽의 질감, 조명의 결, 물성의 균형까지 모든 요소는 말없이 인물의 심리를 대변한다.
박찬욱은 사실적 재현보다 특정한 이미지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표현적 공간을 추구한다.
류성희는 그 요구를 넘어 창조적 해석으로 새로운 층위를 더한다. 그래서 박찬욱의 세계는 언제나 차갑고도 아름답다.
지금의 시각문화가 속도를 쫒을 때, 류성희는 감정의 밀도에 집중한다. 빠르게 소비되는 이미지 사이에서도 그녀의 공간은 말하지 않는 정서를 품는다.
그녀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속도가 아니라, 한 요소에 영화 전체의 기류가 담겨야 한다는 신념이다.
그 태도는 공간을 감정의 언어로 바꿔놓는다. 그래서 그녀의 장면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긴 여운으로 남는다.
류성희의 미술은 심리를 디자인하는 것에 가깝다. 형태보다 감정을, 완성보다는 흐름을 설계한다. 그 중심에는 ’디테일‘이 있다. 아주 작은 요소 하나도 정교하게 선택 될 때, 비로소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고 믿는다.
문지방의 높이, 벽지의 바랜 톤, 식탁 위에 남은 그릇 하나까지 우연처럼 보이는 요소들이 모여 인물의 삶과 관계를 설득한다. 그 디테일이 한국의 생활감과 맞닿는 순간, 익숙한 풍경이 낯설게 빛나는 신선한 감각이 탄생한다.
이런 작업은 기술로 채우는 화면과는 다른 기준을 요구한다. 얼마나 화려한가가 아닌, 얼마나 정확한 감정을 구축하는가의 문제다.
빛, 재질, 여백으로 인물의 내면을 설계하는 감도, 즉 ’보이지 않는 것을 먼저 디자인하는 능력‘이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역량이다.
류성희는 매 작품마다 그 태도를 증명해왔다. 공간을 앞서 꾸미기보다 감정의 상태를 먼저 설계하고, 자신의 미학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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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I NOWKND
Editorial I Ki Yeon 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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